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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012.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Shifting sands)-스티브 도나휴 (Steve Donahue)

 

제목 :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Shifting sands)

 

저자 : 스티브 도나휴 (Steve Donahue)

 

책소개

 

살다 보면 길을 잃을 때도 있고,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기도 하며, 신기루를 좇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여행은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막에서처럼….

 

저자 스티브 도나휴는 20대의 사막여행 체험과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상담 및 적용 사례를 종합해 고안한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씨실과 날실을 엮듯 절묘하게 결합했다. 사하라 사막 여행의 갖가지 사건과 에피소드를 인생의 사막을 건너는 구체적인 실천 지침과 병행함으로써 실제 여행을 따라가는 동시에 삶의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사막을 건널 땐에는 산을 오를 때와는 다른 계획과 방법이 필요하다는 가정하에 수많은 기업과 개인을 상대로 인생이라는 사막, 변화라는 사막을 건너는 효과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적용해 놓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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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도를 보면서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으므로.

 

 생 텍쥐페리, [사막의 죄수] 중에서

 

P.17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아서, 건너편 저쪽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좌절감을 맛본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문화권에서는 항상 인생을 산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목표를 추구하고 성취하는 데 중점을 두고,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문제점을 정의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실행하는 것을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긴다. 이것이 바로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산악인의 정신이다.

 산악인들에게는 목표가 눈에 보인다. 산꼭대기가 바로 저 위에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힘을 얻고 그곳을 향해 나아간다. 정상에 다다르면 목표를 달성했음이 너무나 분명해진다. 은퇴를 준비하면서 저축을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등반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목표가 분명한 것이다. 얼마만큼을 저축해야 은퇴 후에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목표가 애매모호하거나 또는 최종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일종의 과정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바로 사막을 건너고 있는 것이다.

 

P.29

 직장을 옮기는 것은 산이지만 직업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사막이다. 아이를 낳는 것은 산이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사막이다. 꿈에 그리던 집을 짓는 것은 산이다. 이혼으로 그 꿈 같은 집을 잃게 되는 것은 사막이다. 암을 이겨내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을 오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만성 질환이나 불치병을 안고 살아가는 것은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나는 지금 산을 오르고 있는가? 아니면 사막을 건너고 있는가? 동시에 이 두 가지를 다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사막을 건널 때와 산을 탈 때는 걷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딱딱한 등산화를 신고 끝없이 모래가 쌓이는 뜨거운 사막을 건너면 발에 물집만 생길 뿐이다.

 

P.37-38

 지도를 펴보자. 산봉우리에는 이름이 있지만, 모래 언덕에는 이름이 없다. 모래 언덕에 이름을 지어 붙인다 해도, 그 이름을 인쇄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 지도는 이미 구식이 되어 못 쓰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지도와 여행 안내서를 들고 우리 인생의 사막을 건너기 시작한다. 결혼을 할 때나 직장을 구했을 때도 지도를 가지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래땅의 모양이 바뀌면 지도는 아무 소용 없어지고, 우리는 길을 잃는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지도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는 여행의 출발이 된다.

 중년의 사막을 건널 때 분명한 이정표가 보일까? 십 대 아이들을 기르면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폐경기가 닥치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미리 알 수가 있을까? 건강 검진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는다면, 또는 결혼 생활이 산산조각 나버린다면, 인터넷에서 안내서를 다운로드 받아서 변화무쌍한 모래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하지만 지도가 없다고 해서 우리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도가 없으면 마음속의 나침반을 따라가면 되니까.

 우리가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널 때 혹은 변화의 사막을 건널 때, 나침반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찾아 준다.

 둘째, 우리를 더 깊은 사막으로 이끌어 준다.

 셋째, 우리가 목적지보다 여정 자체에 중점을 둘 수 있게 해준다.

 

P.47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친구 알론조의 아버지가 암으로 죽어 가고 있다. 암은 느닷없이 찾아왔고, 진전도 빨랐다. 매주 금요일 저녁 가족이 모여서 식사를 같이 할 때마다 모두들 이렇게 같이 있을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한다. 말기 암은 정말 가혹한 병이지만, 우리에게 순간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라고 가르쳐 주는 훌륭한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바로 발밑에 깔려 있는 모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지금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기 위해 누군가 죽는 그런 일이 닥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P.51-52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방황에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붙는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산의 가치관을 변화의 사막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산의 가치관을 변화의 사막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빙하로 덮인 장엄한 산을 오를 때는 정상에 이르는 가장 안전한 직선 코스를 찾게 마련이다. 그리고 낮에 등반 길에 올라 정상까지 갔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온다. 산을 오르면서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아마 헤매는 일일 것이다.

 방황을 통해 진정한 방향 감각을 얻을 수 있다면 사막에서는 방황이 효과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결국에 어느 나침반 바늘을 따라야 하지만 알게되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문화에서는 방황이 일종의 성년 의례로, 젊은이는 혼자서 사막을 헤매고 다니며 자기 자신의 고유한 성격과 장점을 깨닫는 과정을 거친다. 이것은 자기 인생에서 나침반 바늘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때로 우리는 방황하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신기루를 좇기도 한다. 지구 자기장의 편차에 따라 수정을 해주어야 하는 나침반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내부의 나침반이 항상 진실된 방향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스스로 내부의 나침반을 읽어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부모나 상사, 배우자 그리고 사회가 우리에게 일러 주는 방향을 따라가다가 내 안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방향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우리가 따라가야 하는 나침반의 방향이 별로 달갑지 않거나 고통스러울 경우,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하는 수만 가지 이유가 떠오를 수 있다.

 

P.74-75

 지금 건너고 있는 사막을 한번 생각해 보자. 어떤 종류의 오아시스가 필요한 걸까? 잠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매주 마사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침반 바늘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나 배우자와 또는 오래된 친구과 의미 있는 시간을 갖고 싶은 건 아닐까?

 그러고 나서는 오아시스를 침해하는 야만인들의 목록을 작성한다. 친구나 친척, 동료, 아이들, 직장 상사, 고객, 의무, 프로젝트, 해야 할 일, 완벽주의적인 성격 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만의 오아시르를 보호할 벽을 세운다. 사막과 오아시스를 구분 짓는 분명한 경계선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각오를 해야 한다. 오아시스의 필요성을 믿지 않는 비신도들이 여러분을 시험에 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아시스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일부는 이교도이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해치는 최악의 야만인이 될수도 있다. '아니오'라고 하지 못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오아시스에 걸어 놓은 빗장을 풀어 주는 것과 같다.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습성에 젖어 있는 내 안에서는, 다음 사막을 건널 때까지 오아시스에서 쉬지 않고 계속 가다 보면 나중에 훨씬 더 멋진 휴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속삭임이 들린다. 그렇다. 유목민 복장을 한 산악인이 가장 위험한 야만인이다.

 

P.79

 메마른 곳에 물을 준다

 어떤 오아시스가 필요한지 파악하는 한 방법은 메마른 곳에 물을 주는 것이다. 현재 처해 있는 사막이 혼란 그 자체라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을 찾아 명상을 하거나 요가 수업을 듣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하루 종일 어린아이들과 씨름하느라 힘들다면 말이 통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시간이 필요하다. 거의 하루 종일 혼자서 보내는 사람이라면 밖에 나가서 사회적 교류를 하는 것이 오아시스이다. 하루종일 컴퓨터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는 것은 디지털 사막이다. 이럴때는 화단의 비옥한 토양에 손을 담그고 꽃의 화려함에 취해 보는것이 바로 오아시스가 될 수 있다.

 

P.80

 언젠가 한 장의사가 주말에는 광대로 일하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사막이 너무 심각하다면 웃음이라고 하는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보기 흉한 가죽 옷에 할리 데이비드슨을 타고 달리는 오토바이족들 중에는 회계사, 보험 계리사, 고등학교 교감 같은 사람들이 많다. 하루 종일 규칙을 따르거나 집행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오아시스는 바로 반항의 오아시스인 것이다.

 

P.96

 포장도로가 끝나면 거기서부터 진짜 사막이 시작된다. 포장도로가 끝날 때까지는 길을 잃을 수도 없고, 어딘가에 갇힐 수도 없다. 길이 끝나는 순간부터 사하라 사막과 인생의 사막이 정말 험난해진다. 우리는 자기가 건너고 있는 사막의 존재를 망각한채 일차선 고속도로 위를 고속 질주한다. 그러다가 인생이 갑자기 멈추어 서면 그때부터 여행에, 특히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된 상황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변화의 사막에서 막히게 되는 이유는 탄탄한 땅에서 운전할 때 필요한 기술이 부드러운 변화의 모래 위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때문이다.

 

P.98

 모래가 직업이나 결혼의 고속도로를 덮기 시작한다. 예측 가능함의 포장도로는 중년에 갈라지기 시작하고, 우리는 그때까지 여행하고 있던 다 무너진 길을 돌아서 모래 언덕으로 우회할 수 밖에 없다. 도로가 갑작스럽게 끝나 버리건 또는 점진적으로 갈라지건 결과는 똑같다. 결국 우리는 변화의 모래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갇히는 것은 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인생의 깊은 부분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도 갇혀 본 경험이 없다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갇히게 되면 여러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막히게 되었을때 그 사실을 잘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P.116-117

 오만한 자아 때문에 춤추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누구도 어리숙해 보이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림 수업, 시 쓰기, 외국어 배우기 등등,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만 빼면 즐길 수 있는 수많은 오아시스가 있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을 때도 좋은 모양새를 유지하는 데 몰두하다가, 또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다가 사막에 갇혀 버리고 만다. 자기가 망가지는 모습을 두려워하다가는 새로운 오아시스를 즐기는 경험을 영영 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조금씩 바람을 빼다 보면 크게 바람을 빼야 하는 상황에도 대비하게 된다. 타인과 진정으로 통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삼키거나 사과를 해야 할 때도 있다.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만 빼면 꼬인 인간 관계의 사막에서 헤어나와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치유의 오아시스로 들어설 수도 있다.

 사하라 사막에서 타이어에 공기를 빼는 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공기를 빼는 것은 여행의 일부이다. 인생을 살면서 공기를 빼야 할 때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공기를 빼면 막힌 상황에서 벗어나, 다시 사막을 건너는 여정에 오를 수 있다.

 

P.127-128

 운전하고 가다가 길을 묻는 한 쌍의 남녀를 본 적이 있는가? 그때 보통 질문을 하는 쪽은 여자이고, 남자는 기분 나쁜 얼굴로 말없이 앞쪽만 바라보고 있다. 나는 남자들이 길 묻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남자들은 자기 혼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뭔가 큰 짐을 옮길 때는 주저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혼자서는 냉장고를 옮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혼자 할 수만 있다면, 냉장고 옮기는 것도 아마 기꺼이 혼자 하려고 할 것이다.

 여자든 남자든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하다. 혼자 힘으로 함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으면 혼자서 해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도 상황이 심각하지고 난 이후에야 도움을 청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자기가 능력이 없는 것처럼 비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은 자기의 약점을 보이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자만에 차서 혹은 불편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에게 신세지거나 종속되거나 겸손해져야 하는 상황을 싫어한다. 혹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지금 당장 도움을 청하기 어렵다고 자꾸 뒤로 미루면 나중에는 그렇게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P.143

 앙드레는 창문을 내리고 운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더니 우리에게 외쳤다. "Il ne faut pas s'arreter a la frontiere! C'est dangereux!"

 "뭐라고 하는거야?" 탤리스가 물었다.

 "'국경선에서는 멈추지마.그건 위험해'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이지?"

 "나도 몰라. 국경선에 가보면 알겠지. 거기까지 갈 수 있다면."

 

P162-163

 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기

 캠프 파이어 곁을 떠나려는 우리에게 필요한 신조는 'Semper Non Paratus(항상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지내기)' 이다. 인생의 사막에 대비해서 완벽하게 준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결혼할 준비가 완벽하게 된 상태에서 결혼을 했던가? 아이를 낳아서 기를 준비가 된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던가? 해고당할 때 새로운 직장을 찾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가? 내가 문자 그대로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찌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면 캠프파이어에서 떠나는 것이 쉬워진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변화 단계 이전에 발생하는 모든 위기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실수를 했을 때, 그리고 끔찍한 실패를 했을 때 스스로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다.

 

P.182

 하지만 그들은 오래지 않아 잘못된 믿음 뒤에 가려진 진실을 발견했다. 빌은 '의사가 되기에 너무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니라 '꿈을 버리기에는 너무 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패티는 많은 생각을 한 후에 '딸아이들은 내가 직업인으로 성공하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들은 집을 팔고 짐을 싸서 아이들과 함께 프라하로 이주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가정과 믿음에 도전하는 것은,바로 국경 수비대의 허세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

 

P.201

 여행을 할 때는 도착했음을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면서 그것이 다음 도착지를 향해 내딛는 것임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안에는 여행과 목적지가 공존한다. 누군가 우리에게 사막에 있는지 해변에 있는지 물으면 우리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혼란스럽고 절망스러우며 심지어 필사적이기까지 한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이라고 우리는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여기에 있다. 현재가 바로 나의 인생이며, 난 이제 여기 도착했다"라고.

 

P.207-208

 선원이나 유목민들에게는 인생 자체가 여행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막에서 이동할 때 또는 바다를 항해할 때 그 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인생은 따분할 때도 있고, 무서울 때, 헷갈릴 때, 지겨울 때, 불확실할 때, 즐거울 때도 있고, 무서울 때, 헷갈릴 때, 지겨울 때, 불확실할 때, 즐거울 때도 있다. 우리는 인생의 하루 하루가 그리고 각각의 사막이 어떤 날을 선사해 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멋진 여행을 하기 위해 노력은 할 수 있다.

 멋진 여행이란 돈을 들여서 흔들림 하나 없이 길을 달리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 단순히 여행 하는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태도의 문제이다. 멋지게 여행 하는 것은 끊임없이 밀려오는 인생의 밀물과 썰물을 평화스럽게 받아들이고, 우리 앞에 놓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을 부양하고 있따면 그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일자리를 옮기는 중이라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길을 잃었다면 그 사실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P.212

 "그렇게 고생해서 사하라 사막을 건너 놓고 우리가 해변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해야 한 열흘 정도밖에 안 됐어. 그리고 오늘 밤도 우리는 사막 이야기만 했어. 둘 다 해변은 잊어버린 것 같아."

 "맞아." 내가 말했다. "사막에 대한 기억이 훨씬 더 강렬하게 남아있어."

 "왜 그런 것 같아?" 탤리스가 물었다.

 "아마 우리가 너무 여행 자체에 몰입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막을 건널 때 우린 해변은 안중에도 없었어. 남쪽으로 계속 가면서 오아시스에서 쉬는 일에만 온통 관심이 있었잖아. 인생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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