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009.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남미 #라틴아메리카 #직장때려친 #30대부부 #배낭여행-정다운, 박두산

 

 

 

제목 :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남미 #라틴아메리카 #직장때려친 #30대부부 #배낭여행

 

저자 : 정다운, 박두산

 

책소개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는 정다운, 박두산 작가의 남미 찬양을 읽노라면 마음 한구석이 널뛰기 시작한다. 잉카 제국의 흔적을 더듬고, 우기의 우유니 소금사막과 모레노 빙하에서 엄청난 풍경을 만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게 커다란 선물 사이사이에는 따뜻한 햇살, 돌담 위의 꽃, 골목길 끝에서 마주치는 바다, 맛있는 커피 한 잔, 사람들의 미소 같은 작은 선물들이 들어차 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긍정적인 사람을 곁에 두라”는 말처럼, 작은 것에 가치를 두고 여행하는 이들의 여행기를 듣다 보면 함께 설레고, 함께 웃고, 함께 찡한 순간이 찾아온다. 떠남에 대한 욕구가 마음을 못 견딜 정도로 간질이는, 그래서 무미건조한 일상이 조금은 재밌어지는 이야기를 만나보자.

 

 

 

-------------------------------------------------------

 

 

P.27

한국에서 아침붙 밤까지 회사 책상에 앉아 있자면 어떤 봄은 벚꽂이 피었는지 졌는지 알지도 못한 채 지나가기도 했고, 어떤 가을엔 높아진 하늘 한 번 못 올려다보기도 했다. 벚꽃 색깔이 어땠는지, 꽃은 하나하나 조금씩 다른 모양이었는지, 가을 하늘의 구름은 시시각각 어떻게 변햇었는지. 바로 옆에 있었지만 보지 못하고 지나 보낸 것들이 이제 와서 그리워 진다. 그때의 우리가 안쓰럽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털어버린다. 지금 우린 여기에 있으니까.

 

 

P.60-61

오늘 하고 싶은 것이 오늘 할 일이 된다는 것,

어제 하지 못한 것이 오늘 할 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

내일 해도 되는 일을 굳이 오늘 미리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온전한 오늘의 의미에 익숙해지면서 비로소 여유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쉬는 법을 조금씩 알 수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시간의 단위가 복잡했다. 업무 다이어리는 1년의 시간을 분기로, 월로, 주로, 일로, 시간으로 쪼갰다. 단위가 정교해질수록 열심히 일하는 척할 수 있었다. 때론 너무 비대해진, 그래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의 단위에 짓눌리기도 했다. 일일 업무보고, 주간계획작성, 월간목표 수립, 분기별 성과보고, 연간계획 수립, 중장기 비전설정까지. 모닡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시간을 위해 나의 하루는 완결된 단위로 기능할 수 없었다.

 산 페드로엣의 하루는 온전히 내 것이었다. 나의 호흡에 맞추어 하루가 들썩거렸다. 나는 비로소 하루를 사는 것 같았다. 해가 뜰 때 시작되고 해가 진 후 마무리되는,단위로서의 하루가 아니라 삶으로서의 하루. 너무도 당연한 그것을 나는 처음으로 만끽할 수 있었다.

 

 

P.158-159

원래는 콜롬비아에서 육로로 에콰도르에 넘어가, 페루까지 여행하고 볼리비아로 갈 계획이었는데, 고민 끝에 콜롬비아 내에서 산힐과 메데진 여행한 뒤 곧장 비행기를 타고 볼리비아 우유니로 가기로 했다. 우기 때만 볼 수 있는 '물 찬 우유니'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볼리비아를 천천히 돌고 거꾸로 페루로 간다. 이 결정을 하기까지 또 얼마나 오래 토론을 했던지. 떠날 날을 받아두니 콜롬비아가 더 좋다. 비행기 티켓을 미리 사지 않았다면, 우리 여행은 콜롬비아에서 끝났을 수도 있겠다. 하긴 여행의 마지막 날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면 아직 첫 나라 과테말라에 있었을 수도 있다. 이런 내 말에 남편은, "네 마음처럼 여행하면 죽을 때까지 남미 여행 다 못 한다"고 한다.

 일정이 빡빡해 관광지 위주로 휙휙 다니는 여행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나에게 남편은 "그런 여행도 있는 거지"했다. 맞는말이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여행도 각자의 몫이니까. 모두들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원하는 만큼 걷는다. 누가 누구의 여행을 평가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는것. 여하튼 우리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비자 데 레이바에서, 마치 이사 첫날인 것처럼 동네 여기저기를 어슬렁어슬렁하고 있다. 오길 정말 잘했다.

 

 

P.191-193

선라이즈 투어 버스는 새벽3시에 출발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사막을 달려, '물이 차 있는 곳'을 찾아내 차를 세운다. 하늘에 별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까만 새벽. 해는 천천히 떴고, 우유니 사막은 추웠다. 장화를 신었지만 발목까지 찰랑거리는 물이 차가워 발은 꽁꽁 얼었다. 남자들은 별을 보러 밖으로 나가고 우리는 어두운 차 안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녀가 문득 물었다.

"여행을 좋아하나 봐요? 행복해 보여요."

대답했다. 아주 솔직하게.

"네, 좋아요. 참 좋네요."

"나는 사실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멋진 풍경을 보는 순간에는 참 좋긴 한데요, 글너데 여행하는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아요. 별로 즐겁지가 않네요."

아름답고 아름다운 우유니 사막, 하늘에는 은하수가 빽빽하고, 발치에 찰랑거리는 물 위에도 그 은하수가 그대로 비치는,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는 풍경. 그 위에서 불쑥 던져진 고백.

세계 여행은 그녀 남편의 소원이라고 했다. 그는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 사람이어서 쉴 틈 없이 세계 이곳저곳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고. 그게 조금 힘들다고 했다.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한 뒤 그녀에게 말했다.

"여행이 좋은 저도 가끔은 힘들어요. 그렇지만 또 이런 풍경을 보면 다 잊혀지고....."

아주 가끔 느꼈던 기억들을 꺼내들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휴가 없이 바쁘게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닌 것처럼, 배낭을 메고 낯선 땅을 걷는 사람들이 모두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삶의 비밀들을 하나씩 알아간다.

그녀와 남편은 또 바삐 다음 도시를 향해 떠났다. 남은 여행을 하는 동안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 남편이 그녀의 속 마음을 알아차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녀의 속도에 맞춰 조금 쉬어 가주면 참 좋겠다고. 다정해 보이는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작은 기도를 했다.

 

 

P.200

상상 속 세계 여행은 항상 과테말라 안티구아에서 시작했고, 그 정점은 언제나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과 페루의 마추픽추였다. 실제로 나와 아내는 안티구아에서의 여행의 첫걸음을 떼었고, 지금은 우유니 사막에 두 발을 내딛고 서 있다.

 

내가 꿈꾸고 기대했던 순간을,

내가 꿈꾸고 기대했던 그 모습 그대로 마주하고 있다.

 

나는 지금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P.247~249

여행의 장점 중 하나는 만나는 사람의 유형이 다양해진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쿠바에서 만난 연인과 만난 지 열흘 만에 결혼한 사람도 있고, 환갑 기념으로 250m 번지점프를 뛰는 사람도 있다. 배날 하나만 메고 무전취식으로 여행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고, 1년에 한두 번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남미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아주 가끔씩은 몇 년 혹은 몇십 년째 배낭여행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찾을 수 있는 어떤 공통점이라면 사진을 그다지 즐기지 않거나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 말하자면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애써 타인에게 전하려 하지 않고, 굳이 기록으로 남기려 하지 않고, 그 여력으로 자신에게 보다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자기 확신이 몹시 부러울 때가 있다.

 그런 장기 여행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자유분방함에 대한 동경도 동경이지만 세속적인 호기심도 떨칠 수가 없다. 대체 여행자금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떠나기 전에 돈을 많이 벌어둔 것일까, 부모님이 재벌인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일까. 차마 물어볼 수 없는 몇 가지 질문들이 입가를 맴돈다. 요컨대, 두어 달 뒤에는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돈을 벌어야 하는 처지가 슬퍼질 때가 있다.

 

여행에서 만났던 한 부부가 어느새 한국에 돌아가 다시 취업을 했다는 카톡을 받고 나는 잠깐 멍해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순간도 언젠가는 끝난다는 알람 같았다.

3개월이 지났고 3개월이 남았다. 누군가의 기준으로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경험한 어떤 3개월보다도 길었고, 깊었고, 재미있었다. 평가를 하기에는 이르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떠나와서 다행이다. 되돌아가 힘들지언정.

 

 

P.285

 대부분의 숙소 리셉션에는 방명록처럼 생긴 노트가 있다. 거기엔 이곳에 묵었던 여행자들의 정보가 쭉 적혀 있다. 이름, 국적, 직업, 그리고 이전에 다녀온 도시. 그중에서 직업을 적을 때마다 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온 우리는 이제 직업이 없었으니까.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회사원 혹은 여행가, 가끔은 사진가라고 적기도 했지만 늘 개운치 않은 기분이었다.

 이곳, 후지 여관에 체크인을 할 때도 어김없이 직업을 적으라고 했다. 대준 오빠는 요리사, 성중 언니는 소설가, 예은이는 회계사, 동혁이는 학생이라고 썼다. 그다음 내 차례 하아, 직업을 적으려다 말고 멈칫했다. 나는 8년동안 한 회사를 다녔고 꼬박꼬박 열심히 출근했지만 그만두는 순간 하루아침에 직장과 직업을 동시에 잃었다. 남편도 마찬가지.

 요리사는 요리를 하지 않아도 요리사이고, 소설가는 소설을 쓰지 않는 순간에도 소설가이지만, 회사원은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백수라는 사실을 지구 반대편에서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되다니.

 

 

 

 

 

2017/06/28 - [Book] - 008.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Petit traite de l’abandon : pensees pour accueillir la vie telle qu’elle se propose.)-알렉상드르 졸리앙

2017/06/27 - [Book] - 007.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사사키 후미오

2017/06/24 - [Book] - 006. 다른 길 (박노해 사진에세이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박노해

2016/06/26 - [Book] - 005. 스페인, 너는 자유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버리고 떠난 낯선 땅에서 나를 다시 채우고 돌아오다)-손미나

2016/06/18 - [Book] - 004. 딴생각의 힘-마이클 코벌리스(집중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전하는 멍때림과 딴생각의 위력) : The Wandering Mind: What the Brain Does When You're Not Looking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