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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008.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Petit traite de l’abandon : pensees pour accueillir la vie telle qu’elle se propose.)-알렉상드르 졸리앙

 

 

 

 

제목 :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Petit traite de l’abandon : pensees pour accueillir la vie telle qu’elle se propose.)

 

저자 : 알렉상드르 졸리앙

 

책소개
 

내 안의 상처를 안고 꿋꿋하게 살아가라!

유럽 100만 독자들의 마음속에 스며든 스위스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의 인생 잠언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이 책은 선천적 뇌성마비로 3세부터 17년간 요약시설에서 생활해야했던 저자가 결핍과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 깨달은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신이 마비되어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없음에도 더없이 충만한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하면 즐거울까’를 묻는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며 삶의 지혜를 배운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기독교인이면서 《금강경》을 읽고 좌선을 하면서 천주교 성인을 이야기하는 저자는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붓다, 육조대사 혜능,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에픽테토스, 스피노자, 니체 등 종교와 시대를 뛰어넘는 철학자들의 다양한 메시지를 들려준다. 고통과 슬픔은 우리 안에 늘 자기 자리를 꿰차고 있기에 ‘채워넣음’보다 ‘비워냄’을 통해 영혼의 풍요로움을 이뤄낼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치유가 아니라 상처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전해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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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언행을 칭찬하는 자보다

결점을 친절하게 말해주는

친구를 가까이하라.

-소크라테스


P.16-17

이 책에는 어떤 문장 하나가 반복해서 자주 등장하는데요,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소위 '붓다의 실재'라 부르는 '붓다의 실재'에 관하여, 여래께서 이르시기를 이는 '붓다의 실재'가 아니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를 '붓다의 실재'라 부르니라 하시더라." 이걸 두고 사람들은 웃어넘기거나, 괴이하다고 여길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이 글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제가 저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기꺼이 끌어안기까지 가장 큰 도움이 된 글이기도 합니다. 거기, 인정할 그 무엇도 없다는 사실을 이 글은 말해주고 있었으니까요.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곧 그런 행위를 하는 '나'를 상정합니다. 그런데 '나'라는 것은 이 일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언젠가 저는 이 '나'라는 존재가 거부하도록 프로그램되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냥 내버려두는 경향이 좀 더 크다고 할까요.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에게 '애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받아들여야만 한다" 라고 할 때, 그 강제적 뉘앙스는 분명 '힘들어 애쓸 것'을 요구하지요. 제가 조금전[금강경]에서 인용한 대목은 붓다의 말씀 중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문장인데, 이렇게 요약되기도 합니다. "붓다는 붓다가 아니니, 바로 그래서 내가 이를 붓다라 이르니라." 결국 집착이 없는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p.32-33

아낌없이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을 저 자신의 삶과 육체를 위해 베풀어야 한다는 걸 실감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역에 나가 있었는데, 그날따라 제가 남의 시선에 유난히 민감하더라고요. 제가 가진 이 몸뚱어리가 창피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베네딕토 수사님께 전화를 걸었죠. 그리고 다짜고짜 저의 불편한 심정을 쏟아놓았습니다. 스포티한 근육질의 미남, 어떤 문제도 없는 사람이 되고 싶어 미치겠다며 마구 퍼부어댔습니다. 수사님이 묻더군요. "만약 오귀스탱한테 장애가 있다면 그래도 그 아이를 사랑하겠나?" 저는 대답했습니다.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그야 당연하죠!" 그러자 수사님이 또 묻습니다. "그 아이를 돌보아줄 텐가?" "여부가 있습니까! 지금보다 훨씬 더 잘 보살펴줄 겁니다!" 그러자 수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럼, 오늘 당장, 지금 그 역에 있는 자네의 몸뚱어리를 자네 자식처럼 보살펴주게." 그날 저는 전화를 끊자마자 역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제 몸뚱어리가 보살피고 아껴주어야 할 아이라는 것을 갑자기 깨달은 겁니다. 전에는 이 아이에게서 오직 즐거움과 이득만을 끄집어내려고 안달했을 뿐, 편히 쉬게 해준다거나 매일 녀석이 해내는 것을 존중해줄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몸뚱어리가 제게 남겨준 상처와 장애는 제 손으로 들고 갈 쟁반 위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그 역에서 깨달았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제 몸의 이미지는 결국 쟁반 위에 놓인 무엇이며, 저는 들고 가는 것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요컨대 누군가 그 쟁방 위에 놓인 것을 비웃는다해도 저 자신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예요. 제가 열심히 정성을 들여야 할 일은 세심하고 자상한 태도로 쟁반을 들고 가는 것 뿐입니다.

 

 

P.40-41

지금 바로 이곳에서, 숱한 상처와 더불어, 저는 얼마든지 희열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다음 탈수 때 반드시 기억해둘 것은 "꿋꿋하게 인내하라!" "발버둥치지 마라!"입니다. 그것이 아마도 용기의 정점을 찍는 태도 일 겁니다. 에픽테토스 처럼 우리도 우리의 재량에 달린 것과 우리의 재량을 벗어난 것을 구분해서 생각해보죠. 우리의 재량에 달린것 - 능히 피할 수 있는 상처와 고통들 - 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상황을 변화시켜야겠지요. 하지만 끈질기게 우리의 발목을 잡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처도 존재합니다. 원래 삶이란 그런 것이죠. 따라서 안겔루스 질레지우스와 더불어 꿋꿋하게 견뎌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따금 참지 못하고 안달하는 저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지점에서 진정 거대한 인내가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참지 못하는 자신의 조급한 성향을 꿋꿋이 버텨내면서부터 말입니다. 석가모니 붓다는 [금강경]에서 "거대한 인내 속에는 인내하는 자가 없다"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도구를 건네줍니다. 달리 말해서 인내란 노력이나 긴장이 아니며, 있는 그대로 두는 것. 내려놓는 그 자체를 뜻한다는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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