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

010.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

 

제목 :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The Reader)/(Der)vorleser.

 

저자 :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

 

책소개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에 담긴 시대사!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영화 《더 리더》의 원작 『책 읽어주는 남자』. 독일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대표작으로, 독일어권 문학 최초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는 이 소설로 인한 문학적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프랑스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열다섯 살 소년과 서른여섯 살 여인의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통해 역사와 인간의 죄의식, 사랑, 윤리에 관한 깊은 통찰을 전한다.

길을 지나던 여인 한나의 도움을 받게 된 소년 미하엘.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 두 사람은 이후 비밀스러운 연인이 된다. 한나는 미하엘과 관계를 갖기 전 책을 읽어달라고 말하고,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기’는 두 사람만의 의식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한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겨진 미하엘은 그녀와의 사랑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다. 8년 후, 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 된 미하엘은 법정에서 나치 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한나를 만나게 되는데….

 

 

------------------------------------------

 

P.43

 왜일까? 왜 예전엔 아름답던 것이 나중에 돌이켜보면, 단지 그것이 추한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느닷없이 깨지고 마는 것일까? 상대방이 그동안 내내 애인을 감추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왜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추억은 망가지고 마는 것일까? 그런 상황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동안은 행복했는데! 마지막이 고통스러우면 때로는 행복에 대한 기억도 오래가지 못한다. 행복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고통을 잉태한 것들은 반드시 고통스럽게 끝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일까? 의식적인 고통이든, 무의식적인 고통이든간에? 그러면 무엇이 의식적인 고통이고 무엇이 무의식적인 고통인가?

 

P.49

그녀는 진지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샤워실과 침대로 이끌기전 반 시간가량 그녀에게 <에밀리아 갈로티>를 읽어주어야 했다. 이제는 나도 샤워를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의 집에 올때 함께 가져온 욕망은 책을 읽어주다 보면 사라지고 말았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어느 정도 뚜렷이 드러나고 또 그들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작품을 읽으려면 집중력이 꽤 필요했기 때문이다.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기-이것이 우리 만남의 의식이 되었다.

 

P.66

우리가 서로를 열면

너는 너를 내게 그리고 나는 나를 네게,

우리가 깊이 빠져들면

너는 내 안으로 그리고 나는 네 안으로,

우리가 사라지면

너는 내 안으로 그리고 나는 네 안으로,

 

그러면

나는 나

그리고 너는 너.

 

P.85

나는 한나가 일을 하러 가지도 않고 또 나와 함께 있지도 않을 때면 무엇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내가 그것에 대해 물으면, 그녀는 나의 질문에 대해 면박을 주었다. 우리는 함께 공유하는 생활 세계가 없었으며, 그녀는 그녀 인생에서 내게 허용하고 싶은 만큼의 자리만 내주었을 뿐이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좀 더 가지려고 하거나,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알려고 하는 것조차 이미 주제넘은 짓이었다. 우리가 특히 행복감을 느낄 때 이젠 모든 것이 가능하고 또 허용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녀에게 물으면, 그녀는 내게 면박을 주는 대신 대답을 회피하는 식으로 반응했다. "뭘 그렇게 알려고 그러니, 꼬마야!" 혹은 그녀는 내 손을 붙잡아 그녀의 배 위에 올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배에 구멍이 꿇리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러니?"

 

P.144

그녀는 완전히 탈진 상태였음에 틀림없다. 그녀는 법정에서만 싸운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감추기 위해서 늘 싸워왔고 또 싸웠다. 그것은 실제로는 힘찬 후퇴일 수밖에 없는 전진과 실제로는 은폐된 패배일 수밖에 없는 승리로 이루어진 삶이었다.

 

P.148-149

 하지만 정말로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녀를 구속하고 마비시켜 제대로 몸을 펼 수 없게 만든 이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통해서 그녀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동원한 열정 정도라면 이미 오래전에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녀를 구속하고 마비시켜 제대로 몸을 펼 수 없게 만든 이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통해서 그녀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거짓된 자기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동원한 열정 정도라면 이미 오래전에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당시에 친구들과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시도했다. 한번 생각해봐, 어떤 사람이 고의로 자신을 망치고 있어 그런데 네가 그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입장이야. 그러면 넌 그 사람을 구하겠니? 어느 환자가 수술을 받으려고 하는데 말야, 그 환자가 약물 복용자야. 그런데 그 약물이 마취에 방해가 돼. 그렇지만 환자는 자신이 약물 복용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그것을 마취 전문 의사에게 말하려고 들지 않아. 너는 마취 전문 의사와 의논하겠니? 한번 생각해봐, 어떤사람이 재판을 받는데 말야, 그 사람이 자신이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입장이야. 범행은 오른손잡이의 짓이기 때문에 그는 범인이 아닌 거야.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이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있어. 너라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판사에게 말하겠니? 그 사람이 동성연애자라고 생각해봐. 그런데 그 범행은 동성연애자가 저지를 가능성이 없는 거야.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동성연애자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해. 피고가 자신이 왼손잡이라든가 동성연애자라든가 하는것을 부끄러워할 계제가 아니야. 그런데도 피고가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봐.

 

P.152-153

 "네가 어렸을 때 엄마가 네게 무엇이 좋은지 너보다 자 알고 있으면 네가 마구 화내던 것 생각 안 나니? 어린아이들의 경우에도 그런 이야기를 어느 수준까지 하는 게 좋은 건지가 정말 문제겠지. 이것은 철학적인 문제야. 하지만 철학은 어린아이들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아. 철학은 아이들 문제를 교육학에 넘겨주었어. 그런데 교육학이 아이드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어. 철학은 아이들을 잊었어." 그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영원히 잊었어, 내가 너희들을 잊듯이 그렇게 가끔씩 잊는 게 아니고 말야."

 "하지만......"

 "하지만 어른들의 경우에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고 여기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고 하면 절대 안 돼."

 "나중에 가서 그들 스스로 그로 인해 행복해질 경우에도 말인가요?"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는 지금 행복이 아니라 품위와 자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어. 넌 아주 꼬마였을 때부터 그 차이를 잘 알았잖니. 엄마의 말이 늘 옳은 것이 네겐 별로 마음 편치 않았잖아."

 

 

P.198-199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말이 많으면서도 말이 없는 접촉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던 해에 한나에게서 한마디 인사가 날아왔다.

 "꼬마야, 지난번 이야기는 정말 멋졌어. 고마워 한나가."

 줄이 쳐진 편지지는 노트에서 찢어내 가장자리를 반듯하게 자른 것이었다. 인사말은 그 종이의 맨 위쪽에 세 줄을 채우면서 쓰여 있었다. 인사말은 오래 써서 글씨가 먼지는 파란색 볼펜으로 적혀 있었다. 한나는 펜에 힘을 잔뜩 주어 쓴 것 같았다. 종이 뒷면에까지 글씨 자국이 났기 때문이다. 내 주소 역시 힘을 잔뜩 주어 썼다. 한가운데를 접은 편지지의 아래쪽 면과 위쪽 면에 박힌 글씨 자국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얼핏 보면 그것은 어린아이가 쓴 글씨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글씨체에서 서툴고 어색하게 보이는 부분이 여기서는 듬뿍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선들을 모아 글자를 만들고, 글자들을 모아 낱말을 만들기 위해 한나가 극복해야 했을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손은 이리저리 마구 헤매기 때문에 글씨가 나아가는 길의 안쪽에다 손을 붙잡아두어야 한다. 반면 한나의 손은 그 어디로도 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가도록 몰아대야 했다. 글자들을 형성하고 있는 선들은 획을 올려 그을 때나, 내려 그을 때나, 곡선을 그리거나 고리 모양ㅇㄹ 그리기 전에나 모두 그때마다 늘 새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글자는 새로이 창출해냈다고 할 정도로 그 기울기나 경사의 방향이 새로웠으며 높이와 너비가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녀의 인사말을 읽고서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찼다.

 "그녀가 글씨를 쓸 줄 안다. 그녀가 글씨를 쓸 줄 안다고!"

 나는 그동안 문맹자와 관련된 글들을 구할 수 있는 한 다 구해서 읽었다. 나는 그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겪는, 즉 길이나 주소를 찾을 때 또는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고를 때 겪는 당혹스러움에 대해서, 미리 주어진 생활의 틀과 낯익은 행로를 더듬더듬 따라가면서 여기서 벗어나면 어쩌나 하며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 글씨를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소모하는 정력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 인해 실제 삶에 있어서의 에너지 상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문맹은 미성년 상태를 의미한다. 한나는 읽고 쓰기를 배우겠다는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가는 첫걸음을, 깨우침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P.231-232

 애당초 내가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한 까닭을 이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글로 쓰려고 하니까 기억들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내게서 빠져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어떻게든 글을 통해서 붙잡아두고 싶었다. 하지만 글쓰기 역시 나의 기억들을 되살리지는 못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건드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나는 우리의 이야기와 화해했다. 그러자 우리의 이야기는 되돌아 왔다.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내게 더 이상 슬프을 주지 않을 정도로 둥글고, 완결되고, 나름대로 방향을 지닌 모습으로, 나는 지난 오랜 세월 우리의 이야기가 정말로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우이의 이야기가 행복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이야기가 진실되다고 생각하며, 바로 그런 까닭에 그것이 슬픈 이야기냐 아니면 행복한 이야기냐 하는 물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Book] - 009. 우리는 시간이 아주 많아서 #남미 #라틴아메리카 #직장때려친 #30대부부 #배낭여행-정다운, 박두산

[Book] - 008.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 (Petit traite de l’abandon : pensees pour accueillir la vie telle qu’elle se propose.)-알렉상드르 졸리앙

[Book] - 007.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12가지 놀라운 인생의 변화)-사사키 후미오

[Book] - 006. 다른 길 (박노해 사진에세이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박노해

 

반응형